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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에 담긴 도교의 가르침, 4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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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계속합시다. 그들은 온 숲에‍ 불을 놓고‍ 동물들이 뛰어나오면‍ 잡으려고 했어요. 사람들은‍ 10만 명이었어요. 10만 명의 사람이‍ 사냥하려면‍ 큰 산의 온 숲을‍ 태워야 하겠죠. 그래야 잡을 동물이‍ 충분할 테니까요. 옛날에 어느 정도로‍ 자연을 파괴했는지‍ 믿을 수 있겠어요?‍ 국왕이 백성과 나라를‍ 돌보지는 않고 자연을‍ 파괴하고 다녔네요. 오직 오늘만 생각하고‍ 내일은 생각 안 한 거죠. 그래서 우리 후손들이‍ 고통을 겪는 거예요.

중국에서는 홍수가‍ 빈번한데 최근 들어‍ 부쩍 심해졌어요. 조금씩 도울 순 있겠지만‍ 모두를 도울 순 없어요. 모두가 자연을 계속‍ 파괴한다면 아무도 우릴‍ 돕지 못해요. 신이라도요. 그때 국왕은‍ 10만 명을 대동하고‍ 온 산의 숲을‍ 불태워 버렸어요. 사방 40km가‍ 모두 불에 탔죠. 숲이 타는 가운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산의 절벽에서‍ 나오는 게 보였어요. 그는 불길 사이로 날고‍ 뛰어 다녀도 전혀‍ 화상을 입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들‍ 귀신이라 여겼어요. 모든 게 재로 변하고‍ 불이 잦아들자‍ 그 사람은 조용히‍ 걸어 나왔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어요.

조양자는 깜짝 놀라서‍ 그를 붙잡았어요. 그런 뒤 그를 주의 깊게‍ 살폈죠. 앞뒤 좌우로‍ 또 머리에서 발끝까지‍ 샅샅이요. 어라? 그런데 사람처럼‍ 보였어요. 그는 사람의‍ 모습과 아주 흡사했죠. 얼굴에 눈, 코, 입 다 있고‍ 우리 사람과 똑같았어요. 또 우리처럼 숨도 쉬었죠. 사람처럼 말도 하고‍ 질문에 대답도 했어요.

그래서 조양자는 그에게‍ 물었어요. 『어떤 신통력이 있길래‍ 그대는 바위 틈에서 살고‍ 불에도 타지 않는가?』‍ 그러자 그가 되물었어요. 『무엇이 바위이고‍ 무엇이 불입니까?』‍ 조양자는 말했어요. 『그대가 방금‍ 뛰쳐나온 곳이 바위이며‍ 그대가 걸어서 통과하고‍ 뛰어 넘어 다닌 것이‍ 불이오』‍ 그 사람은 말했죠.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는 바위가 무엇이고‍ 불이 무엇인지 몰랐죠. 그는 만물과‍ 하나였으니까요. 네, 이제 알겠어요?‍ 이런 등급에‍ 이른 사람이 있나요?‍ 있어요. 어떤 자매가 나무에서‍ 나오는 걸 봤어요. 나무 뒤에서 말이에요.

위나라의 위문후가‍ 이 이야기를 듣고‍ 자하에게 물었죠. 『그는‍ 어떤 사람이었소?』‍ 자하는 말했죠. 『공자님이 말씀하시길』‍ 공자는 자하의‍ 스승이었어요. 이렇게 말했죠. 『제 스승인‍ 공자님이 말씀하시길‍ 어떤 이가‍ 만물과 소통하면‍ 만물과 하나가 됩니다. 그 사람이 만물과‍ 하나가 되면‍ 아무것도 그를 해치거나‍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쇠와 나무, 물, 불, 땅도 아무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위문후는 다시 물었어요. 『그대는 왜 못 하시오?‍ 할 수 있소?』‍ 자하는 말했죠. 『저는‍ 공의 경지에, 그 지혜에‍ 아직 이르지 못했습니다만‍ 시간 나면 해볼 수 있죠』‍ 그러자 위문후가 물었죠. 『그럼 그대의 스승, 공자는 왜 안 하오?』 자하는 말했죠. 『공자님은 하실 수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불필요했으니까요』‍ 이를 듣고 위문후는‍ 무척 기뻐했어요. 이게 끝이에요. 다 했습니다.

공자는 할 수 있었는데‍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왜 할 필요가 없었죠?‍ (그럴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죠. 맞아요. 집이 있고 집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는데‍ 왜 굳이 거기에 가서‍ 불에 데고‍ 숲과 바위 사이에 숨고‍ 그렇게 뛰어 다니겠어요?‍

그 사람은‍ 원래 거기서 살았죠. 집도 그 산에 있었고요. 어릴 적부터‍ 거기서 살았을 거예요. 후에 거기서 도를 얻었고‍ 평온하고 한가롭게‍ 걸어 다녔어요. 도를 이룬 뒤에‍ 만물과 하나가 됐죠. 나무가 무엇이고‍ 숲이 무엇이며 바위가‍ 무엇인지 몰랐어요. 그렇게 혼자서‍ 자유롭게 살았죠. 하지만 도시에서 산다면‍ 책임질 일도 있고‍ 학생이나 아이들을‍ 돌봐야 하겠지만 우린‍ 이렇게 계속 살아야죠. 왜 굳이 그러겠어요?‍ 왜 산에 가서‍ 산신이나 호랑이들에게‍ 우리의 영적 수행 등급을‍ 과시해야 하나요?‍ 거기에선 여러분이‍ 누군지 아무도 몰라요. 거기에 가도 다를 게 없죠. 거기에 가서‍ 그런 일을 해도 되고‍ 도시에 머물며‍ 책임을 다해도 돼요. 어느 쪽이나 같아요.

도를 깨달은 뒤에‍ 타이페이의 집을 떠나‍ 처자를 버려두고‍ 아리산에 가서 바위 속으로‍ 들락거리며 뛰어다니고‍ 재미로 불을 지르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요)‍ 그렇게 좋진 않죠. 나쁠 것도 없지만‍ 어리석은 짓이에요. 나쁘진 않아요. 해도 좋아요. 허나 다를 바가 없어요. 마찬가지라면‍ 거기 머물거나‍ 있는 곳에 있으면 돼요. 뭘 바꿀 필요는 없어요. 그런 뜻이에요.

이야기는 아주 많아요. 가령 무인도에 살던‍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있어요. 그들은 매일 행복했어요. 그들은 천국의‍ 주님을 믿었어요. 어떤 목사가 세 사람을‍ 딱하게 여겼죠. 그들이‍ 주님에 대해 몰라서요. 목사는 서둘러 배를 타고‍ 신이 누구시며 신을‍ 믿어야지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등을‍ 가르치러 갔어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고 매일 이것 저것을‍ 외야 하니까요.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나‍ 주님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 미개인들이‍ 안 됐다고 여겼어요.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죠. 세 사람이 거기서‍ 미개인처럼 산다는‍ 말을 듣고 목사는 배를‍ 타고 가서 물었어요. 『당신들은 뭘 믿소?』‍ 그들은 말했죠. 『저희는‍ 주님, 신을 믿습니다』‍

목사는 말했어요. 『어떻게 기도하시오?』‍ 그들은 말했죠. 『매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달리 뭐가 있겠어요?‍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도 셋이며‍ 저희도 셋입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매일 이렇게 기도합니다』‍ 목사는 고개를 젓더니‍ 이렇게 말했죠. 『딱한 일이군, 그건 기도가 아니오!‍ 어떻게 그걸 기도라 할 수‍ 있소? 뭘 모르는군요!‍ 그렇게 말하면‍ 신께서 못 들으실 거요. 잘 들으시오.‍ 이건 성경이오.‍ 매일 이걸 여기에서‍ 여기까지 읽고 꼭 정해진‍ 방식으로 기도하시오』‍ 그는 분명하게 설명했죠.

그러자 세 사람이 말했죠. 『우린 글을 못 읽어요. 글을 모릅니다』‍ 목사는 말했죠 『좋소, 그럼 짧은 기도문을‍ 읽어줄 테니 외웠다가‍ 오늘부터 매일‍ 이렇게 기도하시오.‍ 기도문을 외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외시오.‍ 그러면 효력이 있을 거요. 알겠소?』‍ 그들은 알겠다고 했어요. 그런 뒤 그들은 전부‍ 기억하려고 애썼어요. 반복해서 외고 또 외웠죠. 그러자 목사는 됐다고‍ 생각했어요. 신성한 다섯‍ 명호를 욀 수 있었거든요.

그는 배를 타고‍ 무인도를 떠났어요. 한참 바다를‍ 건너고 있을 때‍ 갑자기 세 명의‍ 미개인들이 무인도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어요. 그들은 바다 위를‍ 그냥 걸어왔어요. 바닷물 위로요. 급히 배를 쫓아왔죠. 그들은 말했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지막 부분을 잊었어요. 어떻게 기도했죠?‍ 잊었어요』‍ 목사는 너무 놀란 나머지‍ 바다로 뛰어들 뻔했어요. 알겠나요?‍ 그런 거죠. 그들은 그렇게 물가, 바닷가에서 살았고‍ 날마다 그들의 마음은‍ 단순하고 청정했어요. 그리고 전심으로‍ 신을 믿었어요. 분별심도 없고 선악을‍ 구분하지도 못했어요. 신이 자신들이며‍ 자신들이 신이란 것도‍ 알지 못했어요.

매일 이렇게 말했죠. 『신께서도 셋이고‍ 저희도 셋입니다』‍ 그들은 무척 행복했고‍ 기도가 뭔지도‍ 몰랐어요. 목사가 그들의 세계를‍ 망쳐 놓기 전까지는‍ 기도가 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죠. 기도문의 마지막 문장을‍ 잊어 버려‍ 다급한 나머지‍ 목사를 찾으러‍ 바다 위를 달려왔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영적 수행자들은‍ 성심과 청정한 마음을‍ 지니는 게 아주 중요해요. 우리가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한다거나, 긴 대비주를‍ 외야 한다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저런 방식으로‍ 큰 절, 작은 절을 하거나‍ 엎드리거나 앉아서‍ 부처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장황한 규칙을 따르는 게‍ 꼭 효과가 있는 건 아니죠. 신실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얼마나 잘 행하고‍ 얼마나 완벽하고 멋지게‍ 예배를 하든 말이에요. 우리 경험상, 외딴곳에 사는‍ 단순한 사람들은‍ 물질적 오염이 적어서‍ 마음이 더 청정해요. 그래서 더 쉽사리‍ 도를 얻어요. 불교나‍ 천주교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많아요. 비슷한 불교 이야기도‍ 알고 있죠?‍ (네)

한 노파가‍ 외딴 산에서‍ 짚과 나무로 지은‍ 오두막에 살면서‍ 매일 이렇게 외었어요. 『옴 마니 반메 뉴(소)』‍ 예전에 잘못 들었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신성한‍ 다섯 명호를 욀 때‍ 틀리는 것과 같아요. 정확히 외는 게 나아요. 핑계를 대지 말아요. 알겠어요?‍ 여러분이 도를 성취할지‍ 어떨진 모르겠는데 일부가‍ 잘못 외고 있다는 건 알죠. 매일 노파는 외었어요. 옴 마니 반메 뉴(소),‍ 옴 마니 반메 뉴(소)‍, 옴 마니 반메 뉴(소)‍, 때론 각자 억양도 다르죠. 그래도 효과가 있어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죠.

내가 대만(포모사)에‍ 처음 왔을때‍ 하루 종일 기도문을 외는‍ 어떤 절을 방문했어요. 이렇게 외더군요.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타불 타불』‍ 그걸 듣고 놀랐어요. 이렇게 들렸거든요. 『두부 두부 두부』‍ 나무두부 두부 두부‍ 원래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외웠는데‍ 나중엔‍ 『아미타불… 두부 두부』‍ 두부가 된 거예요. 그래도 효과가 있었죠. 분명 효과가 있어요. 안 그러면‍ 왜 계속 외겠어요?‍ 어쨌거나 효과가 있죠. 자신에게 효과가‍ 있다면 좋은 거죠. 집중해서‍ 뭔가를 외면‍ 효과가 있을 수 있어요. 집중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이고요. 하지만‍ 우리가 지혜가 열린‍ 상태에서 집중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겠죠. 내면 더 깊숙이‍ 우주의 더 먼‍ 신비스런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노파는 매일‍ 나무 뭔가를 외었어요. 옴마니반메훔‍ 티베트 스승들은‍ 이렇게 외죠.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노파는 잘 못 들었어요. 나이가 들어 청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옴마니반메뉴(소)‍ 이렇게 들었어요. 그래서 노파는‍ 계속 그렇게 외었죠.

때때로 여러분에게‍ 신성한 다섯 명호를‍ 알려주는 걸 보면‍ 다 뒤죽박죽이더군요. 여러분을 오랜 시간‍ 가르쳤는데도요. 그러니‍ 이 얘기도 사실일 거예요. 노파는 이렇게‍ 수십 년간 외었어요.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죠. 부처도 언짢아 하지 않았죠. 뉴(소)라 해도 괜찮았죠. 무슨 상관이겠어요?‍ 모든 존재는 하나인데요. 그래서 부처도 탓하지‍ 않았고 노파도 행복했어요.

한번은‍ 어느 승려가 지나다가‍ 밤에 노파의 집이‍ 금빛으로 환히‍ 빛나는 걸 봤어요. 그처럼 좋은 영적 기운이‍ 있는 까닭을 궁금하게‍ 여긴 승려는 집 안에‍ 대성인이나 대보살의‍ 화신이 있을 거라 여겨‍ 그 집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도 못 찾았죠. 그는‍ 자신이 잘못 알았거나‍ 성인이 무형의 존재라‍ 안 보이는 거라 여겼죠. 아니면 승려가 오는 걸‍ 보고 몸을 숨겼다고요.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가‍ 그는 노파가 베를 짜면서‍ 「뉴(소)」라고 외는 걸‍ 봤어요. 「소」라는 말만 들렸죠.

그래서 물었죠 『여기에‍ 성인이 살고 계신가요?』‍ 노파는 말했어요. 『아뇨, 저 혼자 삽니다』‍ 승려는 말했어요. 『참 이상하군요. 밖에서 보니 금빛이‍ 퍼져 나왔는데요. 근데 뭐 좀 물어 볼게요. 왜 「뉴(소)」를‍ 외고 계시나요?‍ 목어를 치면서 외는 건‍ 무슨 주문입니까?』‍

노파는 말했어요. 『티베트 라마 스승님께서‍ 이 법문을 가르쳐주셨어요. 옴마니반메뉴(소)요. 이걸 매일 1만 번씩‍ 외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수십 년간‍ 외우고 있답니다』‍ 승려는 말했죠. 『아!‍ 옴마니반메뉴(소)가‍ 아니고 옴마니반메훔이죠. 아시겠어요? 훔이요』‍ 노파는 크게 놀라며‍ 말했어요 『수십 년간‍ 잘못 외고 있었네요. 맙소사, 죄송합니다. 불교 주문을 제대로‍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안 그랬으면 해탈하지‍ 못할 뻔했네요』‍ 그때부터 노파는‍ 옴마니반메훔을 외웠죠.

그렇게 알려준 다음‍ 승려는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길을 나섰어요. 노파는 계속 외었고요. 옴마니반메훔‍ 훔 훔 훔‍ 근데 밖으로 나간 승려는‍ 빛을 볼 수 없었어요. 빛이 왜 사라졌는지‍ 궁금했죠. 그래서 다시 들어가‍ 전처럼 외우라고 했어요. 옴마니반메「뉴」로요.

그래서 노파는 다시‍ 옴마니반메뉴를‍ 성심으로 외웠어요. 노파가 옴마니반메훔에‍ 익숙치 않았기 때문이죠. 노파는 집중하지 못했고‍ 마지막 단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하하하」‍ 「후후」, 「유유」 등‍ 뒤죽박죽으로 외었죠. 승려는 됐다며 원래대로‍ 옴마니반메뉴를 외라 했죠. 그래서 노파는 전처럼‍ 외었고 밖에 나간 승려는‍ 다시 금빛을 볼 수 있었죠.

이걸 보면‍ 집중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거죠. 하지만 스스로‍ 핑계를 대지는 말아요. 부처의 명호는‍ 정확하게 외야 해요. 네. 고마워요. 모두 명상합시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안녕하세요, 스승님) (스승님, 사랑합니다!‍ 스승님을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내가 안 보이는‍ 사람 있나요?‍ 다음 생에‍ 올 거라면‍ 키를 더 키우도록 해요. 키가 크든 작든 다신‍ 안 오는 게 가장 좋죠. (스승님, 정말 완벽하세요) 고마워요. 당신이 완벽합니다. 부처의 눈으로 보면‍ 개도 부처로 보이죠. 제 눈에 안경이죠. 보는 사람 마음에 달렸죠. 우리 내면이 아름다우면‍ 남들도 아름답게 보이고‍ 내면이 아름답지 않으면‍ 우리가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방금 그랬죠. 열자는‍ 9년 동안 스승에게‍ 배운 뒤에 사람들이‍ 실수하는 걸 보면‍ 그들이 실수하는 건지‍ 자신이 실수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고요. 그건 사람들의 업을‍ 짊어질 수 있단 거죠. 사람들의 잘못이‍ 자신의 잘못과 같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의 업과‍ 교환할 수 있었던 거죠. 분별할 수 없었던 거죠. 그 사람이 한 실수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 사람과 하나니까요. 그런 뜻이에요. 날 완벽하게 본다는 건‍ 자신이 완벽하단 의미죠. 내면에 참된 미가 있죠. 내가 이런데도 여전히‍ 아름답게 여긴다면 여러분‍ 내면이 아름다운 거죠.

내가 보이나요? (네)‍ 이리 와서 안겨요. 아주 예쁘군요. 이리 와요. (샤오한이에요)‍ 이름이 뭐예요?‍ (리샤오한요)‍ 이름이? (리샤오한요)‍ 예쁜 이름이군요. 본인처럼요. 꽃보다 더 예쁘길 바라요. 모두 만족했나요?‍ 날 보지 못했거나‍ 불만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요. 저 사람을 데려다 줘요. 날 그렇게 오래 보고도‍ 여전히 만족 못 하나요?‍ 그래서 선삼이나‍ 선칠 행사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삼일 밤낮이나‍ 칠일 밤낮으로‍ 날 볼 수 있죠. 시간이 나면 언제든지‍ 와서 봐요. 알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래요. 일요일에‍ 보러 오면 돌아간 뒤‍ 다시 한 주를‍ 잘 견딜 수 있겠죠.

한 자매가 재미난‍ 얘기를 해줬어요. 난 말했죠 『이상하군요. 왜 매주 오는 건가요?‍ 따분하거나 안 피곤해요?‍ 같은 사람을‍ 오랫동안 보면‍ 지루할 텐데요』‍ 그녀는 『아니에요, 전혀‍ 안 따분해요』라고 했죠. 일요일마다 날 보러 오면‍ 고양된다고 했어요. 그런 뒤에 집에 가면‍ 월요일에는 계속 살아갈‍ 수 있겠다 싶다고요. 화요일이 되면 아직은‍ 괜찮다고 느껴지고, 수요일이 되면‍ 스승이 보고 싶어지고, 목요일이 되면‍ 세상이 공허해지고, 금요일이 되면‍ 더는 참을 수 없어서‍ 토요일에‍ 달려온다고 합니다. 일요일에 나를 보고‍ 다시 돌아가서‍ 또 한 주를 살아간다고요. 그렇게 말하더군요.

정말 그런가요? (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렇습니다)‍ 그래요? (네) 이상하군요. 좋아요. 다음주에는‍ 두 이야기를 해줄게요. (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래요, 가요. (안녕히 가세요)‍ 잘 가요.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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