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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자를 위한 안내서: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 - 마이모니데스(채식인),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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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모세스 벤 마이몬 랍비의 저서 『혼란스러운 자를 위한 안내서』 2부 에서 31장과 32장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철학자는 인간의 인식과 이성에 대한 더 많은 통찰을 말합니다.

31장‍

우리는 자연스럽게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끌립니다. 시골 사람에게 이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즐거움이 거의 없고 궁핍한 삶을 살지만, 도시 생활을 싫어하고 도시 생활의 즐거움을 원하지 않으며,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호합니다. 궁전에서 생활하고, 목욕하고 향유와 향수를 발라도, 그들은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진 것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좋아하고 옹호하며, 반대 의견에 귀 닫습니다. 이것 또한 사람들이 진리를 찾는 것을 막고, 습관적인 의견에 매달리게 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신의 육체성에 관한 저속한 관념과 많은 다른 형이상학적 의문이 그런 경우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존중하고 진리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한 성경의 구절과 하나님의 육체성과 다른 그릇된 개념을 문자 그대로 생각하는 오랜 익숙함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사실 상징과 은유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의 이해 부족과 그 제한된 범위에 대해 말한 것이 성경에만 근거한 주장이라고 상상하지 마세요. 철학자들 역시 종교나 소신을 고려하지 않고도 똑같이 주장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증명된 사실을 무시하는 사람만 의심하는 사실입니다.‍

32장‍

이 책을 읽을 때, 정신적 인식은 물질과 관련되기에, 신체적 인식과 유사한 조건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즉 주위를 둘러보면 시야의 범위 안에 있는 만물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눈을 무리하여 너무 먼 물체를 보거나 눈에 너무 작은 글씨나 인쇄물을 확인하려고 시도하고,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눈에 강요한다면, 그 특별한 대상에 대한 시력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당신이 인지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시력도 약해질 것입니다.‍ 당신의 눈은 너무 약해져서, 자신이 무리하고 시력의 한계를 초과하기 전에 볼 수 있었던 것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어떤 과학 연구에 전념하는 사람의 사유하는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너무 열심히 공부하고 사색의 힘을 소모한다면 혼란스러울 것이고, 심지어 자신의 이해력 안의 것조차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점에서 신체의 힘은 모두 비슷합니다. 비슷한 조건에선 정신적 인식도 예외가 아닙니다. 만약 의혹을 인정하고 증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스스로 납득하거나, 반대되는 주장이 전혀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단번에 거부하려고 시도하거나, 인식이 불가능한 것을 인식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인간 완성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며, 그때 (이 신학적인 문제에 대한 연구)에 평화롭게 들어갔다가 평화롭게 나온 아키바 랍비처럼 됩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지적 능력의 한계를 초과하려고 하거나, 불가능하다고 증명되지 않았거나 실제로 가능한 것을 단번에 거부하려고 한다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당신은 완전해지는 데 실패할 뿐만 아니라, 극도로 불완전해질 것입니다.‍

단순한 상상력에만 바탕을 둔 개념이 당신을 지배하고, 결함과 바닥과 타락한 습관을 향해 기울어질 것입니다. 마음을 괴롭히는 혼란과 희미한 빛 때문에 시력이 약화한 병자나, 특히 오랫동안 눈부시거나 아주 미세한 물체를 바라볼 때 많은 종류의 비현실적인 형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감로를 보거든 만족할 만큼만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우리 현자들도 이 구절을 적용했습니다. 이 비유는 정말 훌륭합니다. 지식을 음식에 비유할 때, 잠언의 저자는 가장 단 음식을 언급하는데, 이는 위를 자극하고 병을 일으키는 더 큰 성질이 있습니다. 지식의 본질을 이렇게 충분히 설명합니다.

지식은 위대하고 훌륭하고 고귀하고 완전하지만, 경계하지 않거나 한계를 지키지 않으면 해롭습니다.‍ 적당히 먹으면 영양을 공급하고 기분 좋은 가장 달콤한 음식이지만, 과하게 먹으면 완전히 토해버립니다. 그러므로 『과식함으로 싫어할까 두렵다』가 아니라 『토할까 두려우니라』라고 합니다. 같은 생각을 『감로수를 과식하는 것은 좋지 않다』라고 하고 『지나치게 지혜롭게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라고 표현하죠. 『너는 하나님의 집에 갈 때 네 발을 삼가라』 다윗의 말에도 같은 주제를 언급합니다.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 현자들도 말합니다. 『너에게 너무 어려운 것을 탐구하지 말고, 네게 숨겨진 것을 찾아내지 말고, 네가 공부하도록 허락된 것을 공부하고, 신비에 몰두하지 말라』‍ 그들의 말은 이런 의미죠. 『너희 마음이 인간의 인식 범위 내의 것만 시도하도록 하라. 인간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을 공부하면 극도로 해롭다』 앞서 언급한 말과 같지요.‍ 이 교훈은 또한 탈무드의 구절에도 『네 가지를 고려하는 사람』으로 시작해 『창조주의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 자』라는 말로 끝납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이미 언급한 충고와 같죠. 즉 잘못된 개념으로 경솔하게 추측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어떤 것에 대해 의심을 하거나, 조사 대상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없을 때, 그것을 즉시 버리고 거부하고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하게 물러서서, 창조주의 명예를 고려하여 의견을 내뱉는 것을 망설이며 멈춰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설명했지요. 이러한 말에서 예언자와 현자의 목적은 탐구의 문을 완전히 닫고, 마음이 닿을 수 있는 지식을 이해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무지와 무능을 지혜와 완전함으로 착각하고, 다른 이들의 탁월함과 지혜를 비종교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하며, 어둠을 빛으로 보고 빛을 어둠으로 보는 게으른 사람의 환상과는 다릅니다.‍

예언자와 현자의 온전한 목적은 인간의 이성이 멈춰야 하는 한도가 정해진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사용된 용어와 정신에 관한 다른 용어를 비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주제에 관해 약간의 개념을 주길 원했을 뿐, 지성의 본질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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