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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소치기 다니야, 9부 중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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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아무것도 없죠. 모든 개념, 편견을 버렸죠. 그러니 그저 자유롭고‍ 매우 유연하고 원만하고‍ 물 흐르듯 하죠. 하룻밤을 산다는 말은‍ 내일을 모른다는‍ 뜻이에요.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죠.

나도 때론 의아해요. 왜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용감한데 다른 많은‍ 경우에는 온순한지요. 나 자신도 의아해요.

세상에, 달력이 나왔네요. 이젠 정말 인도로‍ 돌아가야 해요. 그래서 소치기는‍ 자랑스러워했어요. 자신이 가진 것과 소유물, 스스로 자립해서 살고‍ 자신과 가족을 돌볼 수‍ 있다는 것에요. 물론 사람은 그럴 때 뿌듯해하죠.

그는 이렇게 읊었어요.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습니다. 마히 강변에서‍ 처자와 함께 삽니다』‍ 마히는 강인가 봐요. 『움막은 덮고 불도 지폈죠. 그러니 비의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안전하게 느낀다는 거죠. 세속적으로는‍ 필요한 모든 게 있고‍ 안전한 삶이죠. 그래서 비가 온다 해도‍ 두렵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죠.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비의 신에게 도전까지 해요. 바람 신, 천둥 신, 태풍 신, 어떤 신이든‍ 상관없죠. 자신은 아주 강하고‍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어서‍ 걱정할 게 없다는 거예요.

이제 부처가 말해요. 부처는 이렇게 말했어요. 부처 뒤에 쌍점을 찍었죠. 『난 성내지 않고‍ 끈질긴 미혹도 벗어 버렸다. 마히 강변을 따라‍ 하룻밤을 살리라‍. 내 움막 지붕은 열려 있고‍ 불은 꺼졌다』‍ 불은 없어요.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깨달은 존재와‍ 평범하게 생각하는‍ 사람 간의 차이를‍ 알겠죠? 평범한 이들은 이러죠. 『그래, 난 지붕이 있는‍ 안전한 집이 필요해‍. 가축이 필요하고‍ 아내가 필요하고‍ 자식들이 필요하고‍ 시종 같은 게 필요해』‍ 그는 다 있으니 안전하게‍ 느끼죠. 물론 이 세상에선‍ 비바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해요. 물론, 당연히 그래야죠. 하지만 그는‍ 자랑하는 말투예요. 약간은 자만심, 에고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식이죠. 『날 봐‍, 난 잘하고 있어.‍ 없는 게 없어‍. 나 자신과 가족과‍ 이 세상 모든 걸 지킬 수‍ 있어. 난 강인해』‍

하지만 부처는 정반대죠. 아무것도 없어요. 부처는 움막도, 움막이 있더라도‍ 지붕이 없었죠. 지붕이 아예 없다는‍ 뜻일 거예요. 덮을 게 없으니까요. 그럼 어떤 움막이길래‍ 지붕이 없을까요? 노천에 앉았다는 뜻이죠. 보리수 아래에 앉듯이요. 예를 들면요. 『끈질긴 미혹을 벗었다』‍ 이젠 아주 유연하단 말이죠. 사람들이 안전하게‍ 느끼고 안심하기 위해‍ 집착하는 모든 것들, 모든 개념과 편견을‍ 그는 버렸어요. 그는‍ 필요한 게 전혀 없었죠. 모든 게 사라졌어요. 그것들을 전부 없앴어요. 그래서 그는 자유로웠죠.

지금 우린‍ 여전히 뭔가에 집착하죠. 좋거나 안 좋은 게 있고‍ 선호하는 게 있으며‍ 이게 있어야 하고‍ 저게 있어야 하죠. 그럼 아직 마야의 올가미, 통제 하에 있는 거예요. 부처는 아무것도 없죠. 모든 개념, 편견을 버렸죠. 그러니 그저 자유롭고‍ 매우 유연하고 원만하고‍ 물 흐르듯 하죠. 하룻밤을 산다는 말은‍ 내일을 모른다는‍ 뜻이에요.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죠. 『하룻밤을 산다』는‍ 이 말은 부처가 내일이면‍ 죽는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늘 여러분 에고가‍ 작은 걸 알겠어요. 그래요. 사실 에고가‍ 작으면 도움이 되죠. 더 잘 집중할 수 있어요. 때때로 내가 누구를‍ 칭찬할 때마다, 가령 일을 잘했다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면‍ 다음 날엔 일을 그르쳐요. 『스승님이 알아주시네.‍ 내가 대단해서 스승님까지‍ 날 칭찬해 주셨어』‍ 수프림 마스터 TV‍ 방송까지 나가고‍ 싶어한다면 어떨 까요. 그러면 일을 그르치죠. 그래서 주방에서‍ 그들이 일을 망친 거예요.

내게 음식을 갖다 주려던‍ 그 자매는‍ 내 음식과 컴퓨터 위로‍ 알랑거렸어요. 내가 일하는 중인데요. 단지 건너편에‍ 음식을 놓으려고요. 그쪽이 비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말했죠. 『저쪽으로 가요. 저쪽으로 가요』‍ 그런데 내 뒤로, 칸막이 뒤로 가서‍ 주방을 통해‍ 나가는 대신…‍ 나가는 길이 있거든요. 양쪽으로 가서 음식을‍ 차릴 수 있게 되어 있죠. 사람이 많아서 한쪽 만이 아니라 양쪽으로‍ 음식을 차렸어요. 그런데‍ 그녀는 그쪽으로 안 갔죠. 우린 공간이 좁았어요.

그때 어울락(베트남)‍ 사람들이 있었죠? 그날은‍ 어울락(베트남)이었죠? 어울락(베트남)인이나‍ 중국인 연장자들이었을‍ 거예요. 공간이 비좁았어요. 일부는 밖으로 나가야 해서 호법은 전부‍ 내 주위에 앉으라고 했어요. 그냥 작은 의자를‍ 놓고 내 주위에 앉으면‍ 더 많은 이들이 들어와서‍ 주방에 나와 함께 앉을 수 있죠. 그런데 내 뒤편으로 해서‍ 건너가는 대신, 그녀는‍ 호법 뒤로 가면서‍ 그들에게 『비켜요, 비켜요』라고 했어요. 모든 여승 앞을 지나갔고, 모든 호법이‍ 의자를 치워서‍ 길을 내주도록 했고.‍ 바로 내 앞을 지나고‍ 모든 여자 출가승과‍ 남자 출가승 앞을‍ 지나서 반대편으로‍ 건너가려고 했어요. 그저 그렇게 가려고만 했죠. 『자, 난 건너편으로‍ 갈 거예요. 모두‍ 길을 비키도록 하세요』‍ 호법이 다 움직여야‍ 했고 시끄럽게 의자들을‍ 옮겨야 했죠. 그녀는 앞에‍ 음식을 놓고 앉아 있는‍ 여승들 앞을 지나갔어요.

내 식탁에 수저 하나를‍ 놓으려고요! 조심해요. 수저요. 그녀는 수저인가 뭔가를‍ 깜박해서‍ 새 수저를 가져와서‍ 거기에 놓았어요. 가령 식탁에요. 근데 맘에 안 들었는지‍ 수저를 거기에 놨다가‍ 다른 데로 옮기고‍ 또 다른 데로 옮겼죠. 그래도 성에 안 차‍ 아래쪽으로 옮겼어요. 난 『제발 그만 가요! 그냥 두고 가요』라 했죠. 부처의 인내심도‍ 그 정도였나 모르겠어요. 그들은 매일 내 인내심을‍ 갉아먹어요. 모든 이가 조금씩 갉아‍ 먹어서 내 인내심은‍ 이제 뼈만 남았어요.

이런 옷을‍ 입은 게 다행이네요. 어쨌거나 난 평이 안 좋죠. 이젠 날 크게 비난하는‍ 사람도 없어요. 내가 이런 옷을 입으면‍ 처신을 더 잘 해야 하죠. 남녀 출가자 모두 그래요.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 하고 아무것도 못 해요. 설사 부처처럼 아무것도‍ 안 했어도…그냥 앉았다가‍ 탁발만 하러 갔는데도‍ 사람들은 부처를 비난하고‍ 죽이려 했어요. 또 예수는 아무에게도‍ 해를 준 일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죠. 다른 스승들도 마찬가지죠. 정말이지‍ 이 세상은 무서워요. 내가 있으니 여러분은 복이‍ 많은거죠. 아님 누가 여기서‍ 여러분을 보호하겠어요? 법도 잘못‍ 적용될 때가 있어요. 몰이해와 편견 때문에요.

미국에서 한 남자가‍ 법원인가 사법제도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죠. 선입견에 의한‍ 판결을 내렸다고요. 자기 이름 때문에요. 『롭 뱅크』였어요. 로버트 뱅크 씨죠. 로버트를‍ 롭이라고 줄여 부르죠. 그래서 롭 뱅크(은행강도란‍ 뜻)이 됐고, 법원은 그에게‍ 잘못된 판결을 내렸어요. 편견에 치우친 선고였죠. 희한한 이름이죠! 더 나은 이름을‍ 지어줄 순 없었나요? 참 안됐어요. 부모 탓을 했어야 해요.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왜 하필 그런 이름을‍ 지어줬을까요? 안된 일이죠 실화예요.

다시 보죠. 『하룻밤을 산다』는‍ 말은 부처가 내일이면‍ 죽을 거라 생각했다는‍ 말이 아니에요. 왜 그렇게 말을 했죠? 『하룻밤을 산다』‍ 누가 설명해 보겠어요? 시험 보는 시간이에요.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맞아요, 그래요. 최선을 다해 사는 거죠. 내일 죽을 것처럼요. 그래서 나도 늘 그렇게‍ 말하죠. 무엇을 하든‍ 혼신을, 최선을 다하라고요. 마치 처음으로 그 일을‍ 할 영광을 얻은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영광된 일이며‍ 처음이자‍ 마지막 일인 것처럼요.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부처가 말했죠. 『하룻밤을 산다』‍ 이 문장이 맘에 들어요. 여러분은 하룻밤을‍ 사나요? 아마 그렇겠죠. 하지만 여러분 자녀나‍ 남편, 아내, 여자친구, 남자친구는‍ 여러분이 그러길 원치 않죠. 그래서 여기 있다가 집에‍ 가면 다시 그렇게 살겠죠. 아주 맘에 드는 글귀예요.

『마히 강변을 따라』‍ 가진 게 없다는 말이죠. 그러니 부처가 『내 지붕은‍ 열려 있고』라 했을 때‍ 그 뜻은 노천에서, 강변에서 산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없이요. 지붕, 벽, 움막, 다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내 움막 지붕은‍ 열려 있고 불은 꺼졌다』‍ 몸을 쬘 불도 없어요. 전엔 있었겠지만‍ 지금은 꺼졌죠. 그래서‍ 그는 말해요.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그는 신경 쓸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었어요. 두려움이 없는 삶이죠. 많은 요기가 이렇게 살아요. 지금도 인도에서는‍ 이런 정신이 살아 있죠. 두려움 없는 영적 요기는‍ 정말 그와 같아요.

어떤 스승, 이름은 잊었는데‍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책을 썼어요. 출가나 그런 걸 한 것은‍ 아닌데 영적 수행에‍ 매진했어요. 난 그 책을 읽었는데‍ 그 스승 이름은 잊었어요. 어쨌든 거기 나온 이름이‍ 실명은 아니었겠죠. 스와미 모모나‍ 바바, 바부 모모처럼요. 그건 제자들이 그에게‍ 붙인 존함이에요. 그 책도 그가 직접‍ 쓴 건 아닐 거예요. 강연에서 말한 걸‍ 제자들이 글로 남겼고‍ 그 후 스승의 이름으로‍ 책을 냈던 거예요. 이렇게 돼 있어요. 『모모 스승이 말하고, 모모 스승이 쓰고, 모모 스승이 편집하다』‍ 제자들이 책을 내서‍ 스승에게 바친 거예요. 스승이 책을‍ 직접 쓰거나‍ 인쇄한 건 아니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아니에요. 어투가‍ 스승의 것은 아니에요. 자만하는 투로 들려요. 그러니 제자들이 쓴 거죠. 제자들은‍ 스승을 존경해서‍ 늘 그렇듯이‍ 경건한 문구를 넣죠.

자, 이제‍ 소치기가 다시 말해요. 『모기나 쇠파리도‍ 전혀 없고』‍ 집이 아주 안전하다 그런 뜻이에요. 『소들은 들판의 우거진 풀을‍ 뜯어먹으며』‍ 그의 소들도 안전한 곳에‍ 있다는 뜻이죠. 많은 풀이 크게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요. 그러니 만사형통이에요. 거기엔 모기도 없어요. 그가 사는 곳은 안전한 곳, 시원한 곳인가 봐요. 그래서 소들을 괴롭히는‍ 모기도 없어요. 소들은 우거진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고요. 이보다 완벽할 순 없죠? 『풀이 우거졌다』고 했어요. 멋진 시구네요. 풀이 우거진다고‍ 표현하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을 거예요. 아주 시적이네요.

『비가 와도 견뎌‍ 낼 것입니다』‍ 소들이 비 걱정을‍ 안 하는 건‍ 먹을 게 많아서죠.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도전적이죠. 아주 안전하게 느끼고‍ 자신감이 넘친다는 의미죠. 여러분도 늘 이러죠. 『스승님이 돌보셔』‍ 『스승님은 다 아셔.‍ 모든 것을 다 해주셔.‍ 문제없어』‍ 멋진 삶이군요. 잘해봐요! 왜 그러는 거죠? 왜 여러분은‍ 돈은 자기가 다 갖고, 음식을 만들어‍선 자기가 다 먹고,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도 혼자서 다 차지하면서 힘든 일만‍ 생기면 이러는 걸까요. 『스승님이 해주실 거야!』‍ 왜요? 내게 돈이라도 줬나요? 아니죠, 극단적인 요구도‍ 있어요. 『스승님‍ 아침에 깨워 주세요. 제시간에요』‍ 『스승님‍ 차에 기름이 떨어졌어요. 채워주세요, 당장이요』‍ 이건 실화예요. 여러분은 지난 몇 년간‍ 이 얘기를 들었죠. 마치 그들이 장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여러분은 「제자」이지‍ 「장애인」이 아녜요. 오 세상에, 무슨 스승이 모든 걸‍ 다 해주나요? ‍

자, 이제 부처얘기예요. 부처는 말했어요. 『내 뗏목은 이미‍ 잘 만들어져 있다. 거센 흐름에도‍ 끄떡없이 건너‍ 벌써 피안에 이르렀으니‍ 이젠 뗏목이 필요 없노라』‍ 그는 비유로 말했어요. 수수께끼 같죠. 『잘 만들어진 뗏목』‍ 즉 영적인 수행 법문이‍ 있음을 뜻해요. 그래서 존재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거죠. 『피안에 이르렀으니』는‍ 강가나 바닷가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거센 흐름에도』‍ 내면의 거센 흐름, 열정이나 감정, 정신적 동요 혹은‍ 정신을 고양시켜 주지‍ 못하는 욕망을 뜻해요. 그는 그걸 다 제압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뗏목이‍ 필요 없는』 거예요. 그게 필요조차 없죠. 혹은 그걸 가지고 이미 건너 가서 이젠‍ 자유로워진 것일 수 있죠. 심지어 수행할 필요조차 없어요. 어떤 수행법도 필요치 않죠. 그저 자연스럽죠. 앉고 자고 먹고 일하고‍ 쉬는 것처럼 그에겐 이제‍ 자연스러운 게 됐어요. 그 모든 게 선이죠. 알다시피‍ 세상 사람들은‍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 많은 것들에 의존하며‍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허나 그건 영원하지 않죠. 부처처럼 되어야 해요. 뗏목이 없어도‍ 안전함을 느낄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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